Back to the Future 대한극장 이야기

난 서울에서 10대를 보냈다. 그리고 그 10대는 1980년대를 관통했다. 이 조건과 함께 하는 영화팬 중에서 충무로 대한극장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방학이 시작하면 가장 화제가 되는 영화들이 개봉 됐던 그 곳은,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성지였다. 인터넷 예매가 없던 그 시절은 극장 매표소에 서서 표를 사는 것이 영화를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고, 대한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라면 닥치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대한극장 앞에서부터 줄이 이어져 상당히 길게 명동 쪽까지 뻗어가곤 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나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들 모두에게 그건 장관이었다. 그들은 저게 뭐지? 라는 눈빛으로 줄 선 사람들을 바라봤다. 난 그 시선을 즐겼던 것 같다. 그들은 아니지만, 난 이제 곧! 이 영화를 볼 사람이니까.
대한극장 인파의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 있었다. 1987년 7월 17일. <빽 투 더 퓨쳐>가 개봉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두른다고 충무로역에 도착했지만 이미 전철에는 나와 함께 충무로역에 내리는 사람이 많았고, 대한극장 쪽으로 달리는 사람도 많았으며 도착한 그곳은 이미 줄이 길고 또 길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하면서 줄의 끝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끝은 없는 것 같았고 함께 갔던 아버지는 나를 줄 끝으로 보내곤 상황을 보려는지 매표소 쪽으로 가셨던 것 같다. 그 후에 일어났던, 내 생애 가장 치열했던 영화 관람을 위한 고군분투는 굳이 이곳에 적지 않겠다. 아직까지도 친구들을 앞에 두고 지껄이는, 내 십대를 장식하는 대표적 에피소드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린다. 어쨌든 표는 구할 수 있었다. 1회는 아니었지만. (당시 1회를 관람한 사람들의 증언도 듣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했던 거지?)

째깍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 됐다. 거대했던 대한극장 스크린에 대형 스피커가 가득 차더니 마티 맥플라이가 기타 줄을 튕김과 동시에 웽~! 하고 뒤로 날아간다. 그 장면부터 난 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Power of Love’가 들리는 가운데 마티가 스케이드 보드로 등교하는 장면부터는 정신을 거의 잃었던 것 같다. 드로리안을 타고 과거로 날아간 다음부터의 코미디와, 미래를 바꾸는 일격의 통쾌함이나, 사라지기 시작하는 마티(안돼!!!!!! 라고 소리지를 뻔 했다), 미래로 가기 위한 서스펜스까지 영화는 계속 나를 망치로 내리쳤다. 그리고 1편의 마지막 장면. 박사가 마티를 태우고 미래로 가는 장면에서 갑자기 드로리안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스크린을 들이박고 굉음과 함께 끝나는데 그 흥분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연달아 두 번 영화를 봤다. 당시 대한극장 2층 가장 뒤에는 표 없이 앉아서 볼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처럼 연달아 두 번 영화를 보는 애들을 위한 자리였을 것이다. 그 의자를 잡기 위해서는 역시 달려야 했다.

그 다음 주 월요일,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너 그 영화 봤니? 아직 안 봤니? 미친놈. 그걸 안 보고 뭐했냐! 넌 봤니! 그 장면 끝내주지!!! 내 말이!

난 극장에서 사온 팜플렛(당시에는 영화에도 책 같은 팜플렛을 제작했었다)을 걸레가 되도록 보고 또 봤고, 마티처럼 손목시계를 찬 채 괴자세로 잠을 자보기도 했고, 그런 오리털 조끼는 어디서 구하나 궁금했으며, 스케이브 보드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오다 넘어지기도 했고, 우리 동네에는 미친 과학자 하나 안사나 푸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 투 더 퓨쳐>가 속편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것도 2편과 3편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파일 공유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라 어디서든 구해왔던 복사에 복사가 거듭된 불법 VHS들이 동네 비디오 가게의 핫 아이템이었고, 할리우드에서 개봉한지 얼마 후, 우리 동네에도 <백 투 더 퓨쳐 2>의 비디오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건 미국 극장 캠 버전이었다. 그걸 본 반 친구에 의하면 영화가 끝나면 일어서는 관객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난 곧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에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았고, 비짜 비디오로 먼저 봤다는 친구들에게 그 화질로 봐서 뭐하냐는 공허한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나 부러웠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영화가 개봉했다. 친구들과 가서 봤고, 몇 개월 후 3편까지 모두 마스터 했다. 그렇게 <백 투 더 퓨쳐> 트릴로지의 여정을 완료했다.
2편은 1편의 흥분까지는 아니었지만 복잡하게 얽히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고, 사실 3편은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대망의 마무리로서는 손색이 없는 완결편이었다.
그 이후로 <백 투 더 퓨쳐>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고 전설이 되었다. 마치 내 10대를 책임진 영화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게 변화인지 증폭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건지는 기억할 수 없다. 지금 와서 굳이 진실이 무엇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까. 대학교 때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소속되어있던 영화 동아리에서는 학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상영회를 열곤 했는데, 본 영화를 틀기 전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후배가 가져온 <백 투 더 퓨쳐> VHS를 튼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1편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는데,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너무 집중하고 만거다. 그러는데 영화가 끝난 다음 바로 이어서 2편이 시작 되고 말았다. 후배가 그렇게 녹화했다고 하더라. 1편의 마지막에서 하늘을 나는 드로리안이 스크린에 부딪힌 다음, To Be Continued 글자가 나오고 바로 2편이 시작된 시점. 1편 끝과 동일한 장면들이 보여지고는 구름과 함께 뜨는 오프닝 크레딧들. 본 영화를 상영해야 할 시간이라 <백 투 더 퓨쳐>를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마자 객석에서는 아쉬움의 한숨이, 그것도 너무나 큰 소리로 들려왔다. 그 때 이 영화는 나에게만 아이콘이 된 영화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동아리에서 1편을 200번 봤다는 후배도 만나게 되었고, 초면이라 어색했던 후배와 말을 튼 것도 바로 이 영화였으니 말이다.
<백 투 더 퓨쳐>가 나온 지 25주년이다. 영국에서는 디지털 버전으로 변환해 재개봉을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과천 국제SF영화제에서 10월 말, 이 3편을 모두 상영한다. 비록 상영포맷이 디지베타라고는 하지만 이번 상영을 위해 원본에서 바로 뜬 본이기 때문에 화질과 음향이 매우 우수하다는 관계자의 정보가 있다. 화면비도 유지된다고 한다. 중학교 때, 대한극장에 뛰어갔던 그 후,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이 없다. 물론 DVD 세트를 집에 고스란히 모셔놨지만, 그렇다고 많이 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저 한 번 더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영화가 스크린에 다시 투영된다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나 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던 비슷한 나이 대 사람들이 우글우글 나란히 앉아 그 영화를 볼 예정이다. 밤을 세워가며. 다들은 조금 두근두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주 옛날 옛적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있을 때, 이 영화를 내가 보게 되다니, 라며 두근두근했던 적이 있었다. 그 두근거림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어쩌면 이번 상영으로 그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1987년 7월 17일. 대한극장은 그 날의 아수라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사진을 확대해 판넬로 제작하더니 홍보 및 과시용으로 극장 안에 오랜 시간 걸어두었다. 멀티플렉스로 바뀐 후 사진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마 지금도 대한극장 창고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사진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있을 것 같다. 사진 속 어딘가의 내 머리 위에도 먼지가 쌓이고 있을 것이다.

[원본: 어느 네이버 블로그 : 현재 못찾음 => 사진은 창고에 없다고 함. 버렸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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